최근 이란 전쟁이 터지면서 글로벌 금융 시장이 요동쳤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가장 먼저 폭락했을 비트코인이 오히려 선방했습니다. 금은 횡보하고 주식은 휘청거리는 와중에 비트코인만 저점을 높여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도 처음엔 "이게 운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2주 넘게 지켜보니 뭔가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전쟁과 유동성, 그리고 제도권 진입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비트코인 시장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제 경험과 함께 정리해봤습니다.

전쟁이 터졌는데 비트코인이 오른 이유
전쟁이 나면 금이 오른다는 건 투자 업계의 오랜 정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개전 초기엔 금이 강세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금은 지지부진했고 비트코인은 저점을 계속 높여갔습니다. 저도 이 흐름이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비트코인은 보통 악재가 터지면 가장 먼저 자금이 빠지는 '글로벌 ATM'이라는 오명을 달고 있었으니까요.
첫 번째 이유는 간단합니다. 비트코인이 이미 너무 많이 조정된 상태였다는 겁니다. 고점 대비 거의 절반 가까이 떨어진 6만 달러 선에서 바닥을 다지고 있었던 반면, 나스닥이나 금은 역사적 최고점 부근에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비트코인이 훨씬 싼 가격대에 있었던 거죠. 여기서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debasement trade)라는 개념이 작동했습니다. 디베이스먼트란 법정통화의 가치 하락을 의미하는데, 전쟁이 터지면 정부가 국채를 찍어내고 재정 지출을 늘릴 수밖에 없습니다. 투자자들은 "아, 미국이 전쟁 수행하려면 돈을 풀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유동성 확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비트코인을 주목하기 시작한 겁니다.
실제로 이란에서는 전쟁 직후 노비텍스라는 대형 거래소에서 4일 동안 약 1천만 달러의 자금이 빠져나갔습니다(출처: KBS 경제한방). 전기 공급이 끊길 수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디지털 자산으로 재산을 보호하려 했던 겁니다. 비트코인은 공항 검색대도 안 걸리고, 은행을 통하지 않아도 거래가 가능하니까요. 금은 물리적으로 옮기는 데 비용과 시간이 들지만, 비트코인은 사하라 사막 한복판에서도 지갑 주소만 있으면 자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번 전쟁을 통해 비트코인의 정체성, 즉 "지정학적 리스크 속 자산 이동 수단"이라는 역할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입니다.
다만 유가 문제는 여전히 변수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원유 운송의 핵심 지점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보니,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 연준은 2018년 보고서에서 "국제 유가가 10달러 오르면 근원물가는 2년에 걸쳐 0.1%포인트 정도만 상승한다"고 분석했지만(출처: 미국 연방준비제도), 시장은 유가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만약 다음 달 발표되는 PCE 물가 지표에서 유가 영향이 크지 않다면, 연준은 금리 인하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고, 그때 비트코인은 큰 상승을 보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물가 우려가 지속되면 시장은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지지부진할 겁니다.
클라리티 법안과 제도권 진입의 의미
비트코인 시장에서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이슈는 클라리티 법안(Clarity Act)입니다. 클라리티란 '명확화'를 뜻하는데, 이 법안의 핵심은 암호화폐 규제를 SEC(증권거래위원회)가 맡을지 CFTC(상품선물거래위원회)가 맡을지 명확히 하는 겁니다. 여기서 SEC는 증권을 다루는 기관이고, CFTC는 상품을 다루는 기관입니다. 쉽게 말해 비트코인을 '증권'으로 볼 것인지 '상품'으로 볼 것인지 확정하겠다는 거죠. 이게 왜 중요하냐면, 규제 기관이 명확해져야 기업들이 안심하고 비트코인 관련 사업을 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시나리오는 3월에 상원 통과, 4월에 하원 통과,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 서명으로 확정되는 순서였습니다. 그런데 법안 통과가 지연되자 SEC와 CFTC가 직접 MOU(양해각서)를 체결해버렸습니다. "이건 네가 하고, 저건 내가 하자"는 식으로 자체적으로 교통정리에 나선 겁니다. 법으로 확정돼야 할 일을 규제 기관끼리 먼저 합의한 건데, 이 자체가 "흐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여기에 더해 주목할 만한 사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크라켄 파이낸셜(Kraken Financial)이라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연준 마스터 계좌(master account) 승인을 받았습니다. 마스터 계좌란 연준의 결제 시스템인 페드와이어(Fedwire)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계좌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크립토 기업이 제도권 금융기관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디스카운트 윈도(긴급 유동성 지원)까지는 접근할 수 없지만, 이 한 걸음이 스테이블코인 대중화로 이어지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겁니다.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이란 달러 같은 법정통화에 1:1로 가치가 고정된 암호화폐를 말합니다. 가격 변동성이 거의 없어서 실생활 결제나 송금에 활용하기 좋습니다. 클라리티 법안이 통과되면 스테이블코인 발행 기관이 이자를 줄 수 있는지, 어떤 규제를 받아야 하는지가 명확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일반 기업들도 안심하고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할 수 있고, 결국 비트코인 생태계 전체가 확장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클라리티 법안 통과 여부가 올해 연말 비트코인 가격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라고 봅니다. 만약 법안이 연내 통과된다면 비트코인은 13만~14만 달러까지 갈 수 있고, 통과가 지연되면 8만~9만 달러 선에서 횡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유동성이나 이벤트만으로 비트코인을 해석하면 늘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트코인이 결국 '디지털 금'이 될 수 있을지, 문명사적·철학적 관점에서 먼저 결론을 내리고 유동성 흐름을 설명해야 일관된 투자 관점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향후 3~4년 비트코인을 롤러코스팅시킬 진짜 변수는 스테이블코인의 헤게모니 싸움이라고 봅니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과 금 기반 위안화 스테이블코인, 이 둘의 경쟁이 비트코인 시장의 방향을 결정할 겁니다.
이더리움은 왜 여전히 부진한가
비트코인이 선방하는 동안 이더리움(ETH)은 여전히 힘을 못 쓰고 있습니다. 작년 4월 1,400달러였던 이더리움은 8월 4,000달러를 넘었다가 다시 조정을 받으며 지금은 2,000달러 초반대에서 횡보 중입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레이어2(Layer 2)가 성장했는데 왜 이더 가격은 안 오르지?"라며 실망하고 있습니다. 레이어2란 이더리움 메인넷의 처리 속도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조 블록체인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고속도로가 막히니까 지선도로를 만든 셈인데, 문제는 이 지선도로에서 발생하는 수수료가 메인넷으로 충분히 돌아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더리움 가격이 오르는 구조는 간단합니다.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거래가 많이 일어나면 수수료가 발생하고, 그 수수료로 이더를 소각(burn)해서 전체 공급량을 줄입니다. 공급이 줄면 개별 이더의 가치가 올라가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사용량이 늘어도 가격이 안 오르는 상황입니다. 저는 여기에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 이더리움 DAT 기업(Digital Asset Treasury, 디지털 자산을 국고처럼 보유하는 기업)들의 매수세가 약해졌습니다. 작년 4월부터 8월까지 비트마인 같은 DAT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이더를 사들이면서 가격을 밀어 올렸는데, 지금은 그들이 산 가격보다 시세가 낮아서 추가 매수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일부 전문가는 "작년 4~8월 상승이 비트마인 매수세 덕분"이라고 주장하는데, 솔직히 저는 이 분석이 좀 억지스럽다고 봅니다. 비트마인은 그 기간 외에도 꾸준히 사들였거든요. 단순히 DAT 기업 탓으로만 돌리기엔 설명이 부족합니다.
둘째, 더 근본적인 이유는 펀더멘털(fundamental, 자산의 본질적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들)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겁니다. RWA(Real World Asset, 실물자산의 토큰화)와 스테이블코인,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 생태계는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RWA란 국채, 부동산, 주식 같은 실물 자산을 블록체인에 올려서 거래하는 걸 말하는데, 지금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분야입니다. 이런 흐름이 지속되면, 마치 공항에서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클래식에 익숙해지듯, 사람들은 이더리움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질 겁니다. 디파이든 RWA든 결국 이더리움 기반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제 경험상 이더리움은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단기적으로 시총 20위 밖의 알트코인들은 상당히 힘들 겁니다. 리플(XRP) 같은 상위권 코인은 괜찮겠지만, 변동성 높은 소형 알트코인들은 유동성이 빠지면 버티기 어려울 겁니다. 저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만큼은 펀더멘털이 확고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외 코인들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전쟁을 겪으면서 비트코인 시장은 또 한 번 변곡점을 맞았습니다. 단순히 "전쟁 났으니 오른다" 식의 단편적 해석보다는, 유동성 확대와 제도권 진입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비트코인을 바라봐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장기 투자자의 관점을 유지하되, 클라리티 법안이나 PCE 물가 같은 중요한 변수들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투자 결정을 조정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코스피가 하루에 10% 오르내리는 세상에서 비트코인만 욕먹을 이유는 없습니다. 모든 자산이 코인화된 지금, 중요한 건 확고한 철학과 유연한 대응입니다.